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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장. 신앙 그리고 혀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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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장. 신앙 그리고 혀와 지혜

야고보서 3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2-11-21

말씀내용
3장. 신앙 그리고 혀와 지혜 (찬 212)

1. 야고보는 3장에서 혀(말)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혀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큰 유혹이 된다. 늙으면 젊었을 때의 능력이 사라지고 많은 꿈들이 사라지므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삶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거듭되는 좌절감과 무력감으로 악한 말이 많아지게 된다.

2. 야고보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1). 목사나 교사가 되는 걸 주의하라는 말이다. 이들을 좌절시키려 하거나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소명, 은사, 영적 성숙과 성품의 훈련 여부를 검증하지 않은 채 교사가 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생이 되려는 동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야고보는 선생이 많이 되지 말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로 선생된 자들이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1). 교사나 목사의 말에 대한 큰 책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선생된 자들이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한 말이 모두 평가 받을 것이다. 그 기준은 이런 것들이다.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셨는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가? 주님의 진리가 드러났는가? 주님의 사랑이 나타났는가?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과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도움이 되었는가? 선생이 되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이다. 선생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이 기준에 따라서 자신의 말을 돌아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다 실수가 많은 사람이기에 선생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2). 칼빈은 “자신의 연약성에 대한 지식보다 우리의 우월감을 더 잘 저지시켜주는 지식은 없다”고 말했다.

3. 이어서 야고보는 혀의 능력을 언급한다(3~12). 분명히 경건과 믿음 그리고 혀와 말은 깊은 연관이 있다. 혀는 작지만 그 능력을 자랑한다는 말은 혀의 영향력, 지배력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혀는 말의 재갈(3), 배의 키(4)에 비유될 수 있다. 또 혀의 파괴력은 대단해서 작은 불씨가 산불이 되는 것과 같다(5). 혀는 불이다(6). 혀가 가진 파괴력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세계’라는 말로 표현했다(6). 혀는 불의의 세계다. 그래서 온 몸을 더럽히고(들어가는 것이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나가는 것이 더럽힌다) 인생 전체(생의 바퀴)를 파괴하기까지 한다(6). 짐승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서길들일 수 있겠지만(7), 혀는 길들일 사람이 없다(8). 그래서 하나님께 도움과 지혜를 구해야 한다. 혀는 일관성을 가져서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와서는 안 된다(9~10). 주님을 사랑하는 자, 주님의 소유가 된 자들은 혀의 이중성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샘이 한 구멍으로 단 물과 쓴 물을 내지 않고, 무화나 나무가 무화과를, 포도나무가 포도를 맺듯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11~12).

4. 야고보는 여기서 다시 지혜의 문제로 돌아간다(12~18; 1:5).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지적 사고 보다는 실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행위가 없는 지혜,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지혜는 참 지혜가 아니다(13). 지혜의 온유함을 보이라는 말은 지혜의 기본 자세가 겸손임을 보여준다. 온유함이 없는 지혜는 역겨울 뿐이다. 성도들은 타락한 세상에서 가장 듣기 거북한 진리를 선포할 때에도 온유와 겸손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참 지혜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경건한 삶을 실천하도록 하는 능력 있는 지식을 제공한다. “지혜는 하나님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는 윤리적인 행실이다.” 반면에 세상적인 지혜도 있다(14~16). 그것은 거짓된 지혜이고(14), 자아만 섬기는 지혜다. 겸손함이 드러나는 지혜가 아니면 남을 누르고 앞서려는 이기심과 시기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지혜는 창조주로부터 온 것이 아닌 세상적인 것이며, 영적이지 않은 정욕적인 것이고, 마귀적이다(15). 고로 거짓 지혜를 과소평가하거나 사소한 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런 세속적 지혜는 조만간 무서운 결과를 일으킨다. 교회 안에 세속적 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세속적 지혜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이시다(고전 14:33). 참 지혜는 하늘의 지혜다(17~18). 이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며, 성결, 화평, 관용, 양순(온순하고 순종하는 자세), 긍휼(적극적인 동정),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이다(17). 참 지혜를 소유한 자는 결국 의의 열매를 거둔다.

5. 우리는 이 본문에서 많은 기도 제목을 얻는다. 주님께서 우리의 혀를 주장해주시고, 우리로 세상의 지혜에 대하여 장성한 자가 아니라 참 지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에 있어서 장성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는 것이다.

6. “하나님 아버지, 저희 입이 거룩해져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혼들을 부요하게 하는 말들로 풍성하게 하옵소서. 또한 저희를 세상 지혜와 그 오만함으로부터 지켜 주시옵고 온유하고 겸손한 하늘의 지혜를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