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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 4장. 교회가 전해야 하는 선명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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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 4장. 교회가 전해야 하는 선명한 복음

역대하 3, 4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3-12-11

말씀내용
대하 3~4장 교회가 전해야 하는 선명한 복음 (찬 93)

1. 본문은 솔로몬의 성전건축에 대한 기록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보여주신대로 이루어졌다(대상 28:12,19) 성전은 모리아 산에 세워졌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산이고(창 22) 다윗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백성을 전염병으로 치실 때 그 진노가 그쳐 다윗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하늘에서 불로써 제물을 받으셨던 오르난의 타작 마당 자리다(대상 21:18,26). 다윗은 이 사건 후에 그곳을 성전 건축의 터로 정했었다(대상 22:1).

2. 성전의 규모는 거대했고 그 지성소는 성막과 비교할 때 규모가 매우 컸다(사방 모두 9m). 속죄소 위에 두 개의 큰 그룹을 만들었는데, 날개를 편 두 그룹의 길이는 20규빗(9m)에 달하였다. 성전 입구에 세워진 웅장한 두 기둥은 높이 8m이고(15절에 35규빗이라고 표기된 것은 왕상 7장의 18규빗이라고 한 것의 거의 두 배인데, 이것은 두 기둥이 바닥에 누워있을 때 두 길이를 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려한 장식이 있었다. 그 이름을 각각 야긴과 보아스라고 했는데, 야긴은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의미이고 보아스는 ‘하나님 안에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이 두 기둥은 성전에 들어오거나 성전을 바라보는 모든 자들에게 우리 안에 아무 힘도, 자기를 구원할 능력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었을 것이다. 두 기둥은 복음의 메시지였다.

3. 성막의 놋단은 사각으로 길이와 넓이가 각각 5규빗이고 높이가 3규빗이었으나 성전에서는 길이와 넓이가 각각 4배인 20규빗이었고 높이도 10규빗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제단의 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지면서 하나님께 바칠 제물도 많아지게 되고 또 그들의 죄악이 더 많아지는 것을 암시한다. 이 제단에서 제물들이 태워지는 것을 보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깊이 회개하는 심정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4. 성막의 물두멍이 바다(The Sea)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는데 규모는 17,500갤론(약66,000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었다(4:2~5). 이것은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몸을 깨끗케 하는데 사용되었고 별도로 지어진 10개의 물두멍은 제물을 씻기 위한 용도였다(4:6). 또 열 개의 금촛대, 열 개의 상을 만들어 내전(성소)에 두었다(4:7~8).

5. 하나님께서 이삭을 대신하여 숫양을 제공하셨던 그 장소에 성전이 세워졌다. 이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제공해주신다는 여호와 이레의 메시지가 함축된 것이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제공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이다.

6. 성전에 들어오는 자들은 먼저 웅장한 두 기둥 보아스와 야긴을 주목했을 것이다. 이 두 이름은 복음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 안에만 힘이 있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이 복음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가 가진 힘, 인간을 높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야긴과 보아스는 교회가 전해야 하는 선명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7. 이스라엘은 광야의 시절에 비해 비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을 누렸다. 거기에 합당하게 다윗은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했고(그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했다!) 솔로몬은 부친의 뜻을 따라 동일한 신앙의 열심으로 성전을 건축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받은 은혜와 누리는 축복에 따라서 합당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가?

8.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교회가 구약의 성전이 주던 선명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함을 인하여 마음이 상하옵나이다.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교회가 선명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강단과 설교자들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교회마다 복음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증거되는 복된 시대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