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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장.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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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장.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히브리서 4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11-09

말씀내용
4장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찬 388)

1. 모든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주어졌다(1~13). 안식은 가나안에 들어갈 때 다 성취된 것이 아니었다(8~9). 진정한 안식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인생의 마지막에 충성스럽고 신실한 순례자들에게 주실 은혜의 선물이다. 1절의 ‘그의 안식’은 아브라함이 바라보았던 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가리킨다(11:10). 왜 광야에서 조상들이 일차적 안식을 상징하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는가(2)? 그들도 신약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복음 전함을 받았으나(능력의 말씀을 들었으나)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으로 듣고 읽어야 함을 경고한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간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3)? ‘저 안식’은 처음 예수를 믿고 고백했을 때, 그리스도를 따르는 지상 순례길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성화는 영화의 첫 단계다. 그러나 시 95편을 인용하여 미래시제로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한 것은 불신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안식을 누릴 수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세상을 창조하고 칠일째 쉬실 때 하나님의 안식은 이미 시작되었다(3~4절). 그리고 믿음 안에서 죽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은 지금 하나님과 더불어 쉬고 있다(10). 그리스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은 욕구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마음이다.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신앙만으로는 안 된다. 본문은 두 가지 동기부여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과(12) 하나님의 본성이다(1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면 우리는 그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말씀은 하나님의 목적을 반드시 이루며 힘이 있다. 말씀의 검은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깊이 꿰뚫고 말하지 않은 생각이나 숨겨진 개념들까지 감찰한다. 말씀은 영적 존재의 가장 깊은 잠재의식 속에 있는 동기도 빛 가운데로 끌고 온다. 또한 하나님은 얇은 껍데기 같은 외적 경건 밑에 감추인 인간의 진정한 생각을 보신다. 우리는 다 그분 앞에 벌거벗은 자와 같이 드러나게 될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2. 정결케 된 사람들이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자기 힘으로 되지 않는다. 본문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소개한다(14~5:10). 그리스도는 이미 승리하셨고(2:9, 14~18), 승천하사 성부의 보좌에 나아가심으로써 대제사장의 사역을 성취하셨고 그 효력은 사람들에게 지금 미치고 있다. 예수님은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다. 이전의 모든 대제사장을 능가하신다. 사역의 범위, 효과, 대가 모두에서 뛰어나시다. 예수님은 ‘인간’ 대제사장이시기에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의 시련을 아신다. 또한 예수님은 ‘독특한’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의 승천은 하나님의 보좌가 계시는 하늘의 지성소로 단번에 나아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 도리’인 신앙 고백을 굳게 잡아야 한다. 굳게 잡는 것은 단순히 인내하는 것만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담대히 증거하는 것을 포함한다. 또 주님은 ‘인자한’ 대제사장이시다. 1세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처럼 그분도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으셨다. 성도는 적대적인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며(14), 외롭다고 느낄 필요도 없다(15).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수 있는 힘은 빌라도 앞에서 믿음의 고백을 드러내신 분에게서 온다(딤전 6:13). 예수님께서 우리를 동정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때, 우리는 용기를 얻고 모든 상황에서 굳게 설 수 있다. 본문은 신약의 가장 중요한 초청을 제시한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16). 은혜의 보좌는 지성소의 시은소(mercy seat)를 말한다. 짐승의 피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가 이미 뿌려졌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찢어졌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뿌림을 통하여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왜 나아가야 하는가? 긍휼하심을 얻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 긍휼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주시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벌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함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함으로, 전능하신 아버지의 도우심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다. 포사이스(P. T. Forsyth)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죄의 근원이라고 했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진지한 믿음의 기도에 바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태도는 교만의 극치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실제적 무신론의 죄를 최악의 형태로 범하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만 그분 없이도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도의 자리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중대하고 시기 적절한 자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3. 우리가 참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고 살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맛볼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안식을 맛볼 수 없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보장이 없는 것이다.

4. “하나님 아버지, 믿음과 믿음이 만들어내는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며 살게 하시되, 이 땅에서도 믿음으로 그 안식을 맛보며 살게 하옵소서. 날마다 저희의 능력이 아닌 저희의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살게 하시고 그를 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복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