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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61). 나보다 높은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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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61). 나보다 높은 바위

시편 61:1-8 / 김형익 목사 / 수요예배설교 / 2020-04-22

말씀내용
1. 마음이 약해진 자들을 위한 시편
살다 보면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시편 61편은 마음이 약해질 때 성도가 드리는 기도입니다. 표제어에 의하면 이 시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2절에서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마음이 약해질 때 이 시편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마음이 약해질 때’라는 말은 다윗이 영적으로 침체되었거나 혹은 영혼과 육체가 소진되어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땅 끝’에 있었습니다. 이 표현은 다윗이 물리적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멀리 나가 있던 상황을 가리키는지, 심리적으로 다윗의 마음 상태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약해지고 땅 끝에서 부르짖는다는 표현을 볼 때, 다윗의 인생에서 유사한 경험을 했으리라고 여겨지는 대목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제일 먼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 궁을 떠나 요단 강을 건너 멀리 피신을 해야했을 때(삼하 16-17)를 생각합니다. 이 상황은 다윗의 마음도 크게 상하였을 뿐 아니라, 영혼과 육신이 모두 소진하였을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이 시편이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쓴 것이라면, 사울에게 쫓김을 당하는 상황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시편 60편이 쓰여지던 그 상황과 같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를 정복하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 인근에까지 주력부대를 이끌고 군사 원정을 나갔을 때의 상황입니다. 이것은 다윗에게는 가장 먼 군사 원정이었습니다. 이틈을 타서 유다의 남방을 친 에돔에게 패배를 경험했을 때 쓴 시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삼하 8; 시 60). 하지만 본문 자체로만 볼 때, 어떤 상황을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윗이 말하는 ‘땅 끝’도 물리적 거리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심리적 거리를 표현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극한 상황을 묘사한 표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마음이 약해질 때를 경험합니다. 몸은 예배당 안에 있어도 얼마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벗어난 땅 끝에 있는 영적 상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루살렘 성소로부터 물리적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다윗이 원수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매우 위험한 극한 상황이기 때문에 하루 속히 예루살렘 성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다양한 상황, 다양한 마음 상태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도의 지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마음이 아파 탄식하는 사람들이 그 슬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그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이 바로 이 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 안전을 간구하다 (1-2)
어려움과 위험함 속에서 마음이 연약해진 성도가 하나님께 안전함을 구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거나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안전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시편 61:1).”라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부르짖음’은 크게 소리지르는 것이고 고조된 감정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통 때 부르짖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다 부르짖는 기도일 수는 없습니다. 방지일 목사님께서 살아계실 때, 기도에 대해서 쓰신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대화를 할 때 입만 열면 부르짖고 소리 소리 지르면서 대화를 하는 아들이 있겠는가? 평상시에는 조곤 조곤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통일 것이고, 매우 특별한 상황에서는 부르짖고 큰 소리로 외치기도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 부르짖는 기도가 정상적 기도인 것처럼 강조되는 현상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부르짖음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다윗이 위험한 상황에 있으며,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르짖음’은 보통 ‘기도’와 병행하여 사용됩니다. 다윗은 자기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자기 기도에 주의하여 들어달라고 간구합니다.
다윗은 자기 마음이 약해 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기절할 만큼 정신을 잃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땅 끝’에 있다고 느낍니다. 그는 자기가 ‘땅 끝에서’ 주님께 부르짖는다고 말합니다.
그가 처음으로 구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나보다 높은 바위]입니다. 다윗이 나보다 높은 바위라고 말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중요합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을 가리켜 반석, 바위라고 종종 표현을 했습니다(18:2, 31, 46; 19:14; 28:1; 31:2–3; 40:2; 61:2; 62:2, 6–7; 71:3; 78:35; 89:26; 92:15; 94:22; 95:1; 144:1.).
특별히 본문에서 다윗이 ‘나보다 높은 바위’에 자기를 인도해달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스펄전은 한 가지 좋은 예화를 들려줍니다: 영국 북부 해안에서는 배가 침몰해서 사람들이 죽는 예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바다에 사람 키 보다 높이 솟은 바위들이 있곤 했는데 물살에 떠밀려가던 사람들이 거기에 오르기만 하면 살 수가 있었는데, 그런 바위들이 대개 미끄럽고 오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보다 높은 바위’에 오르기만 하면 살 수 있을 텐데, 지치기도 했고 미끄럽기도 하여서 도무지 자기 힘으로는 그 바위에 오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다윗이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심장이 멎을 듯 멎을 듯 다급하지만 이 땅 끝에서 내가 당신을 부릅니다. 나의 힘으로는 오를 수 없는 바위, 저 높은 바위에 나를 올려 세워주소서.”


3. 나보다 높은 바위는 주님의 품이다 (2-4)
‘반석은 그리스도다’ 하는 것만으로는 이 시편의 풍성한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다윗이 말하는 ‘나보다 높은 바위’가 그리스도이신지를 추적할 수 있는 흔적이 이 시편에는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3절에서 다윗은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라고 고백합니다. 바위가 여기서는 피난처라고 고백될 뿐 아니라, 그 피난처가 주님이심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다윗이 구한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키가 큰 바위가 아닙니다. 피난처는 몸을 숨기거나 위험으로 피할 수 있는 장소인데, 굴이나 구멍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난처는 다윗이 사울로부터 도망을 다닐 때, 숨었던 아둘람 굴이나 엔게디 광야의 굴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어서 다윗은 주님은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라고 고백합니다. 이제 ‘나보다 높은 바위’는 ‘피난처’를 지나 ‘견고한 망대’로 이어집니다. 망대는 성읍에 높이 솟아있는 요새를 가리킵니다. 잠언에 기록한대로,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언 18:10).” 견고한 망대는 바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대변되는 주님 자신이십니다.
4절로 가면, 다윗은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라고 고백합니다. 이제 ‘나보다 높은 바위’는 어느새 ‘주의 장막’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주의 장막은 당연히 예루살렘의 성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의 성소를 사모했는지 압니다. 그는 비록 하나님의 자비로운 거절을 받기는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성전을 건축하기를 구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마자 가장 먼저 언약궤를 모셔옴으로써 하나님의 임재의 장막에 대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었습니다. 만일 시편 84편이 다윗이 쓴 시가 맞다면(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이 시편은 주의 장막을 사모하는 다윗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편 84:1-4,10).”
다윗은 간절히 주의 장막을 사모합니다. 거기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지금 다윗이 처한 자리는 ‘땅 끝’입니다. 다윗이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한 것은 결국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고 싶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4절 하반절은 다윗이 궁극적으로 바라고 구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주의 날개’는 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어하는 다윗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말한 주의 장막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윗이 ‘주의 날개’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고, 그 언약궤 위 속죄소에 연하여 서 있는 두 그룹 천사의 펼쳐진 날개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용맹한 장수였고 왕이었던 다윗은 마치 어머니 품을 원하는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품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131편에서 고백한 것이 이 기도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편 131:2).”
자,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다윗이 2절에서 구한 바, ‘나보다 높은 바위’가 바로 ‘주의 날개’ 곧 주님의 품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땅 끝에서 마음이 약해진 그는 주님의 품에 안겨 모든 위험의 요소로부터 안전하고 평안하기를 바랬고 그것을 구한 것입니다.


4. 바위는 그리스도
다윗이 주님을 반석과 바위로 묘사하는 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어 목이 마를 때, 하나님께서 반석을 지시하여 거기서 물을 공급해 주신 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말을 합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린도전서 10:4).”
우리는 지금까지 바위가 그리스도시라고 선언하는 바울 사도의 말씀이 어떻게 다윗의 심정에서 그러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 시편 전체를 담아내기는 조금 부족합니다.
다윗이 ‘나보다 높은 바위’라고 했을 때, 그 바위는 자기 힘으로는 오를 수 없는 바위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 바위, 자기 보다 높은 그 바위는 자기 힘으로는 도무지 이를 수 없는 곳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스펄전의 말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가장 큰 노력, 성취, 소망, 기도, 생각 보다 훨씬 높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그리스도께 마음대로 나아가 그 품에 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44).”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은혜를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자기 힘으로 원하기만 하면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건방진 인간의 태도를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가르칩니다. “죄인인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없다. 왜냐하면 죄인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고 그분에게로 나아오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만 우리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만일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신다면, 여러분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은혜를 베풀어주신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더욱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로 나아가기를 애써야 합니다. 더 큰 은혜를 주시기를 구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말씀과 기도라는 은혜의 수단을 더욱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마땅합니다. 지금 다윗이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2절을 다시 봅니다.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시편 61:2).”
기도하기 조차 싫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다윗의 처지가 지금 그러한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무엇이라고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까? “내 마음이 약해질 그 때에, 나는 기도하기 조차 힘들 것을 압니다. 하지만, 주님, 그 때에도 저는 주께 부르짖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결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마음이 약해져서 기도하기 힘들 때, 기도를 중단했었더라면, 그는 절망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종종 우리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교훈이 아닙니까?
다윗이 그리스도를 찾았다는 것은 모든 위로와 평안과 은혜가 흘러나오는 근원이 어디인지를 알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데이비디 딕슨(David Dickson)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영적 위로의 근거는 속죄소를 덮고 있는 그룹의 펼쳐진 날개를 통해서 나타나는 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안에 놓여있다. 거기서 우리의 믿음은 풍성한 위로를 제공하는 견고한 근거와 안식을 누리게 된다.”(Phillips, R. D. (2019). Psalms 42–72. (R. D. Phillips, P. G. Ryken, & I. M. Duguid, Eds.) (p. 200).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다윗은 엉뚱한 데서 자기의 위로를 찾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합니까? 땅 끝에 있다고 느낄 때, 여러분의 마음이 연약해질 그 때, 여러분도 다윗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를 찾는가 말입니다. 다윗이 구한 ‘나보다 높은 바위’는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5. 왕을 위한 기도 (5-8)
다윗이 이 시편의 전반부(1-4절)에서는 자기의 안전을 구하였다면, 후반부(5-8절)는 그가 안전 너머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5절입니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시편 61:5).”
이 구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기업’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생애에서 추측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 서원이 하나님께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한 것을 가리키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삼하 7:1-2,5).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은 받으셨지만, 그 일을 허락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어주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윗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사무엘하 7:16).”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의 안전을 넘어 하나님의 기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과 관련한 이 말씀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복된 약속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37:11, 29).”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편 16:5–6).”
하지만, 이어지는 6-7절은 조금 어색한 기도라고 느껴집니다.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시편 61:6–7).”
다윗이 여기서 누구를 가리켜 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다윗 자신이 왕이 아닙니까? 왕의 장수, 그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는 것,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주하는 것(왕으로 좌정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언약의 말씀대로, 이것은 다윗의 대에서 왕위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에 대한 다윗의 반응입니다(삼하 7:16). 다윗은 그 언약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따라 간구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기도가 결국 어떻게 성취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메시아의 인격 안에서 넘치도록 성취됩니다! 인자(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셨던 그리스도 안에서(요 1:14, 17) 다윗의 이 기도는 넘치도록 성취됩니다. 이 은혜에 만족하게 될 때 성도는 다윗과 같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시편 61:8).”


6. 교훈과 적용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안전과 위로는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신자들은 엉뚱한 데서 위로를 찾는 자들이 아닙니다. 성도의 위로는 돈과 지위, 성공과 성취에서 오지 않습니다. 다윗이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했듯이, 여러분도 여러분이 처한 모든 상황에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성도가 누리는 모든 위로와 평강과 안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나보다 높은 바위’라고 표현함으로써, 주님의 품에 안기기를 구했듯이, 거기에 여러분의 안전과 위로와 평강과 안식이 있습니다.
둘째로, 다윗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히 썩지 않을 영광의 기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멀리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럴 수 있습니다.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 안에서 넘치도록 성취될 것을 구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대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인가 우리는 천군천사들과 함께, 하늘 위와 땅 위, 땅 아래, 그리고 바다 위와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영원히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그 복된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