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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57).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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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57).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시편 57:1-11 / 김형익 목사 / 수요예배설교 / 2020-02-19

말씀내용
시편 57편은 제가 특별히 사랑하는 시편 중 하나입니다.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한 것도 제가 기억하는 것만 4번 이상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찾아보니 가장 최근에 이 본문을 설교한 것은 채 2년이 되지 않는 2018년 3월 4일이었습니다.
시편을 강해하는 중에 다시 이 본문을 설교하기 위해, 본문을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설교를 듣는 여러분 모두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구합니다.


1. 두 개의 현실을 살아가는 신자 그리고 신앙의 본질
지난 시편 56편 강해에서, 신자에게는 두 개의 현실이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내 눈 앞에 서 있는 두려운 사람들도 현실이지만, 믿음의 눈을 떠서 보는 바, 모든 상황과 사람을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존재도 신자들에게는 분명한 현실입니다. 시편 57편도 56편과 마찬가지로, 다윗이 궁지에 몰려서 드린 기도이기에,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두 개의 현실에 맞닥뜨린 다윗을 발견합니다.
표제어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쓴 시라고 밝힙니다. 우리는 두 경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우리가 잘 아는 바(56편의 배경이었던),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피하러 갔다가 신분이 밝혀지면서 미친 척을 하고 쫓겨나서 아둘람 굴로 피신했던 상황입니다(삼상 22:1-2). 성경은 이 때 그의 가족들과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즉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에게로 나아왔다고 기록합니다. 사울에게 쫓기는 다윗의 부담은 더 커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다윗이 이 시를 썼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상황은 이후 다윗이 계속 사울에게 쫓겨 엔게디 광야의 굴에 숨어 있었을 때의 상황입니다(삼상 24). 다윗을 쫓던 사울이 용변을 보려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은신하고 있던 굴로 들어왔고,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가만히 베는 것으로써 사울의 목숨을 살려준 사건이 일어난 것이 이때였습니다.
이 시편이 두 상황 중 어떤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본문에 접근한다면, 본문을 이해하는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윗이 경험하는 또 하나의 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첫 번째 단락에도 내내 흐르고 있지만, 주로 두 번째 단락에서 충격적일 정도로 그 다른 상황으로 나타납니다. 다윗이 먼저 몸으로 겪는 현실이 소위 ‘재앙들’이라면, 또 하나의 현실은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다윗이 경험하는 바,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영적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두 현실이 공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두 현실이 공존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시편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시편 57편은 두 개의 시가 합쳐진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다윗이 두 개의 단락에서 각각 묘사하고 있는 두 개의 현실들이 너무나 차이가 나서 이 둘을 조화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극에서 극으로 달리는 두 개의 상황이 동시에 하나의 시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시려는 신앙의 본질인 것입니다.
우리는 매주일 예배당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수요예배에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교회의 필요를 채우고 교회를 잘 세워 가기 위해서 봉사도 합니다. 교리를 배우고 코이노니아 그룹에서 받은 은혜와 삶을 나눕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심지어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성실하게 교회 생활을 하면서 수 년 혹은 수 십년을 살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하는가? 그렇게 하는 가운데 나는 신앙의 본질, 신앙의 정수를 맛보고 있는가?
여기서 신앙의 본질, 신앙의 정수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이 시편 57편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본문은 두 단락, 1-5절과 6-11절로 구분됩니다. 각 단락은 동일한 후렴구인 5절과 11절로 마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편 57:5,11).”


2. 다윗이 몸으로 겪고 있는 현실
먼저 다윗이 몸으로 겪고 있는 현실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다윗은 56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로 시작합니다. 57편은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합니다. 그만큼 더 절박하다는 것입니다. 아무 기도도 할 수 없을 때, 이렇게 다윗처럼 짧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다윗이 처한 위기의 상황, 구원에 대한 간청 등 모든 내용이 이 짧은 기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에서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윗의 이 간구는 자기 자신에게 이것을 구할 자격, 그리고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드리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본래 “내가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낮아져서 낮아질 대로 낮아진 사람만이 이렇게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겸손해진 사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상황을 통하여, 다윗을 낮추실 대로 낮추셨고 겸손하게 빚어가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1절에서 두 차례나 ‘피한다’는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다윗은 피난처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는 도망쳐야만 하는 상황 속에 놓여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라고 고백하는 다윗의 상황은 한 마디로 ‘재앙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내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납니다. 그것이 다윗이 말하는 재앙들입니다.
다윗이 앞에서 ‘피하되’라고 말한 것은 히브리어로는 완료형인데, 바로 지금까지 그렇게 주께로 피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뒤에 ‘피하리이다’는 미완료형으로, 앞으로 꾸준히 계속해서 하나님께 피하겠다는 다윗의 결심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건짐을 받기를 바라는 상황은 3-4절에서 상세히 묘사됩니다. 3절입니다.“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시편 57:3).” ”
무엇보다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이 다윗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4절에서 자세히 서술됩니다.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시편 57:4).”
원수들이 가진 힘을 묘사하려고 다윗은 ‘사자’라고 표현합니다. 다윗은 마치 사자들 틈에 살고 있다고 느낍니다. ‘불사르는 자들’이라는 말은 불사르듯이 소멸하고 삼키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 뿐이 아닙니다.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고 혀는 날카로운 칼과 같습니다. 그들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들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무섭습니다.


3. 다윗의 영적 현실 인식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
여러분도 인생 중에 이런 현실을 비슷하게 겪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감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묘사하고 있는 말들은 전혀 과장이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다윗이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신자가 이런 상황에서 영적 현실을 인식하게 될 때(믿음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영적 현실을 인식하는 수단입니다. 구원 얻는 참된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그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지 영적 현실을 보게 합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신자가 영적 현실을 인실할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지존하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을 열어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분께 부르짖습니다. ‘지존하신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 위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모든 신들 보다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작정을 벗어나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다윗이 제일 먼저 이 상황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께로 피하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다윗의 몸은 사울을 피하여 굴에 숨어 들어왔지만, 다윗의 영혼은 주께로 피하였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여 있는 것입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라는 표현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다윗은 마치 어미새가 새끼를 날개 아래 보듬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품으시고 보호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보호를 표현할 때, 시편 기자들과 구약성경은 종종 이런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시 17:8; 36:7; 61:4; 63:7; 91:4; 룻 2:12). 주님 자신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37).”
이 표현은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있는 두 그룹의 날개를 연상하게 합니다. 다윗이 그것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한 상상이 아닙니다. 비록 다윗의 몸은 사울의 추격을 피하여 한 굴에 숨어있지만, 그 영혼은 믿음으로 지성소, 곧 하나님의 임재의 날개 그늘 아래 숨어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지성소를 침범하겠습니까?(시 91:9-10)
다윗은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 재앙들이 지나갈 것을 압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이 사실은 신자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릅니다. 영어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The darkest hour is only 60 minutes.” 아무리 깜깜하고 어두운 시간도 그저 60분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곧 지나갑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고 있고, 그때까지 자기가 피할 곳은 굴이 아니라, 주의 날개 그늘 아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피합니까?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써 피하고 있습니다. 가장 위대하고 높으신,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또한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지존하신 하나님이 비천한 나를 멸시하지 않으실 것을 압니다. 도리어 그분은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간결한 고백이 가지는 확실함은 놀랍습니다. 이 고백은 낙심과 절망, 그리고 두려움을 한 순간에 감사와 기대의 확실성으로 바꾸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자신이 처한 재앙들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성들을 향합니다. 3절 하반절에 그는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라고 자신의 확신을 피력합니다. ‘인자와 진리,’ 우리가 성경에서 많이 보는 하나님의 두 속성인데, 동전의 양면처럼 기능을 합니다. 심지어 사도 요한이 주님의 성육신을 묘사할 때에도 이 두 가지 속성을 언급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사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시는 인자와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자, 그러면 우리는 이제 4-5절의 연결을 이해할 수 있고, 57편의 첫 단락과 두번째 단락의 연결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4절에 묘사한 대로, 사자들 가운데 살며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워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사자들, 불사르는 자들 틈에서도 평화롭게 누워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자들 틈에서 사는 다윗의 마음은 어느 새 평안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4절에 이어 5절의 고백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편 57:5).”
불안함과 두려움, 낙심과 절망이 사라지고 다윗은 어느 새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고 높아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이 겪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건짐을 받기 전에 이미 그의 영혼이 건짐을 받았고 그래서 자기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운 전환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이 시편의 두번째 단락인 6-11절에서 더욱 선명하게 보게 됩니다.


4. 확정된 마음과 찬송
두번째 단락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찬송하는 내용 일색입니다. 두번째 단락만을 놓고 본다면, 이 시편이 사울에게 쫓기는 다윗이 굴에 숨어서 쓴 시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6절은 다윗의 상황을 조금 엿보게 하는데, 여기에도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원수들이 사냥꾼이 짐승을 쫓듯이 그물을 준비하고 웅덩이를 팠다고 말합니다. 이 일이 초래한 복합적인 결과를 서술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허리를) 굽힌다’는 뜻인데, 근심과 고통 가운데 다닌다는 말입니다. 원수들은 다윗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몸으로 겪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원수들이 다윗을 잡으려고 판 웅덩이에 빠진 것은 결국 다윗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결과입니다. 6절 하반절에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라고 말한 것을 학자들은 예언적 과거시제라고 말합니다. 당장 다윗이 이 시를 쓰고 있는 동안에 그 일이 일어난 게 아닙니다. 다윗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이것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악의 종말을 보고 있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바,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고백을 그가 믿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확신에 도달한 다윗이 경험했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이 두번째 단락의 내용을 형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시편 57:7a).”라고 강조하여 말합니다. “
이 아름다운 고백, 다윗의 이 표현을 주목합시다. 확정되었다는 말은 ‘고정되었다, 확고하다, 안정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어떤 것에 의해서도 흔들리거나 불안하게 떨리는 마음이 아닙니다. 이 확정된 마음은 다윗이 지금 몸으로 겪고 있는 현실의 재앙들을 이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그 믿음으로 경험하는 승리의 증거는 안정됨(stability)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크게 요동하지 않는 것, 이것은 성숙한 신앙의 중요한 증거입니다.
이렇게 확정된 마음에서 감사와 찬송이 나옵니다. 더 이상 다윗은 자신 혹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노예가 아닙니다. 비록 몸은 그 상태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거하는 다윗의 영혼은 이미 건짐을 받았기에 “내 마음은 확정하고 확정되었다”고 고백하면서“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8절입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 57:8).”
‘내 영광아’라는 표현은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존재, 자신에게 중요성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가지는 영광입니다. 적들에게 눌려서 찌그러져 있었고 죽은 듯이 잠자고 있던 자기의 영광을 향하여 깨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멋진 음악가였던 다윗은 비파와 수금을 깨웁니다.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께 노래하고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새벽이 나를 깨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새벽이 오기 전에 깨어 있다가 새벽을 깨우겠다는 말인데,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밤을 지새우겠다, 혹은 하루를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겠다는 뜻일 겁니다.
그리고 멋진 찬송이 결론으로 나옵니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편 57:9–10).”
자기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부터 ‘만민’과 ‘뭇 나라’그리고 ‘하늘’과 ‘궁창’으로 다윗의 전망이 확장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이야기에 가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온 세상에서 만민 중에서 찬송받으시기에 너무나 합당하신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그가 보내신 인자는 너무나 커서 하늘에 미치고, 그가 보내신 진리는 너무나 광대하여 궁창에 이른다고 고백합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크심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한 번 후렴구인 1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편 57:11).”
이것이 신자가 확정된 마음으로부터 드릴 수 있는 감사와 찬송의 고백입니다.


5.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확정되는 마음
시편 57편은 신자가 환난과 재앙 가운데 있을 때,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라고 교훈합니다. 신자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여 숨을 때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마음이 확정되는 것입니다. 어디서 여러분의 마음이 확정될 수 있습니까? 돈과 물질이 우리로 하여금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다”고 고백하게 하지 못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세상에 그 무엇도 사람으로 이런 고백을 하게 하지 못합니다. 고백만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확정되고 안정되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감사와 찬송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살아오면서 이런 것을 경험하셨습니까? 이 고백을 공감하십니까?
신앙의 본질과 신앙의 정수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일 예배드리고 코이노니아의 교제를 나누고 봉사하고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한다고 할지라도, 정작 우리가 우리 마음을 주를 향하여 고정하고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재앙들이 물러가고 고난이 사라지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정말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오늘 다윗과 함께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신자가 경험하는 복락이요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은혜에 잠겨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