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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56).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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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56).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시편 56:1-13, 사무엘상 21:10-15 / 김형익 목사 / 수요예배설교 / 2020-02-12

말씀내용
두려움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실존입니다. 오늘 시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두려움을 솔직하게 표현할 뿐 아니라 그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4절 하반절에서 다윗은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말하고 11절 하반절에서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묻습니다. 이 반복된 외침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두려움은 우리 삶에 상존하는 요소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사실 힘을 가진 사람이 내게 할 수 있는 일은 적지 않습니다. 나를 해고할 수 있고, 내 꿈을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고, 내 것들을 힘으로 강탈할 수도 있으며, 나를 배신하거나 내 마음을 찢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나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할 수 있고 이런 일들은 우리 삶에서도 더러 일어납니다.
다윗은 이런 두려움 속에서 이 시편을 썼습니다. 표제어는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에게 잡힌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상 21:10-15의 상황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사무엘상 21:10–15).”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원수인 블레셋으로 도망가야 할만큼 급박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블레셋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없을 만큼 알려져 있던 다윗은 바로 아기스 왕의 신하들에게 정체가 드러났고 그때 다윗은 “가드 왕 아기를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결국 다윗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미친 척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을 놓아주게 하는 것이었고, 놀랍게도 이 시도는 성공하게 되고 다윗은 풀려납니다. 시편 56편은 이 두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일을 회상하면서 이 시를 썼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 상황과 관련, 한 편의 시를 더 썼습니다. 블레셋의 손에서 놓인 후 유다 땅으로 돌아와 아둘람 굴에 숨어들었을 때 쓴 시편 34편입니다.


1. 시의 구성과 성격
56편과 함께 57편도 유사한 상황 속에서 기록된 시편입니다. 56편이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렛인에게 잡힌 때에” 쓰여진 시편이라면, 57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쓰여진 시편입니다. 그리고 두 시편 모두 그런 두려움과 환난 속에서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성도의 삶에 두려움의 요소,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일들을 전적으로 피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두려움을 넘어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시편들입니다.
이 시편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구절은 4절과 10-11절입니다. 4절을 보지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편 56:4).”
그리고 10-11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편 56:10–11).”
4절과 10-11절은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후렴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첫번째 연은 1-4절로 다윗이 자신의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이고, 둘째 연은 5-11절로 원수들이 망하기를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첫째와 둘째 연은 같은 후렴으로 끝나게 되고, 마지막 결론인 12-13절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와 서원을 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시편은 절망적 현실에서 시작해서 낙관적 소망과 감사로 마치고 있습니다.


2. 은혜를 베푸소서(1-4)
이제 첫번째 연을 보겠습니다(1-4). 이 시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이것은 매우 평범해 보이는 간구지만,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의 실존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말은 사실 이 시편의 모든 기도의 내용을 다 담고 있는 내용이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오직 한 마디만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기도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이런 기도를 드려 보셨습니까? 절박할 때, 두려움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신 대로, 모든 순간에 우리는 이런 은혜를 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연약한 피조물인 인간이 매순간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순한 간구는 기도 중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년, 우리 교회에서는 기도 저널을 쓰도록 모든 교우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늦은 밤, 하루 종일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울 힘도 없을 때, 우리는 단 한 마디,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고, 또 그 한 마디 문장을 기도 저널에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이것이 블레셋 가드의 아기스 왕 앞에 정체가 드러난 다윗이 한 순간에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였습니다.
다윗이 이런 기도를 드린 것은, 그에게 두려움이 엄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3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진 우리에게는, 다윗에게 그랬듯이, 이런 두려워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그 상황을 1절 하반절부터 2절에서 설명합니다.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시편 56:1b–2).”
먼저 우리는 다윗이 ‘종일’이라는 말을 두 번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조금의 쉴 틈도 없이, 원수들이 그를 옥죄어오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다윗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을 삼키려 한다는 말도 1절과 2절에서 두 번 반복됩니다. 이 단어는 ‘짓밟다, 부수다, 헐떡이며 쫓아오다, 짓밟혀서 복속되다’와 같은 의미로 번역될 수 있는 말입니다 . 그래서 다른 번역성경들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공동번역)“사람들이 나를 들볶습니다.”
(새번역) “사람들이 나를 짓밟습니다.”
(NLT) “people are hounding me”(사람들이 나를 사냥개로 쫓고 있습니다.)
원수들은 이렇게 다윗은 종일 치며 압제합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자기들 위에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런 두려움의 날에 하나님을 의지하노라고 고백합니다. 이 두려움의 상황을 종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기 때문입니다.
4절 상반절에서,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는 말씀은 사실, 하나님을 의지하고(두번째 반복) 찬송하는데 그 찬송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할 뿐 아니라 찬송합니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다윗은 뭔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 약속하신 말씀을 지금 생각하고 있고 붙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내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 믿음으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런 주의 말씀을 믿기에, 그는 이제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여기서 우리는 시편 118:6 과 이 구절을 인용하는 히브리서 13:6을 암송하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편 118: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브리서 13:6).”
이 두 구절은 본문 4절과 같은 선언이고, 모든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고백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3. 원수들을 멸하소서(5-11)
두번째 연에서, 다윗은 이 원수들을 멸하여 달라고 간구하며 원수들을 고소합니다. 5-6절입니다.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시편 56:5–6).”
원수들은 다윗의 말을 곡해합니다. 그들의 의도는 사악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다윗은 ‘종일’이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무슨 말을 해도, 다윗의 말은 그릇되게 해석되고 왜곡되어 전달될 것입니다. 의도 자체가 사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윗의 생명을 취하려고 모여서 숨어 다윗의 발자취를 지켜봅니다. 이것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주님께서도 그대로 당하신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몰래 모여 숨어서 주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과 발끝을 주목했습니다.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누가복음 11:53–54).”
원수들의 악행을 고발한 다윗은 이제 그들을 멸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시편 56: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라는 의문문은 도망할 수 없다는 것을 확정적으로 말하는 수사법입니다. 그 행악자들은 도망갈 데가 없고 숨을 데가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향해 분노하시고 높아질 대로 높아진 그들을 낮추시길 간구합니다. 심판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뭇 백성’이란 표현은 좀 이상해 보입니다. 이것은 그 악인들의 집안 전체를 암시하는 것인지, 다윗의 원수들을 심판하실 때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심판해주시길 바란다는 것인지, 혹은 가드 왕 아기스와 그의 군대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한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봅니다. 사무엘하 5:17-25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사무엘하 5:17–25).”
사무엘하 8:1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사무엘하 8:1).”
이어지는 8-9절은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기 편이 되심을 확신하게 되었는가를 기술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시편 56:8–9).”
하나님은 다윗의 유리함을 계수하셨다고 하는데, 계수한다는 말은 물건을 세어보고 숫자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완전하게 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전지하신 하나님께 이 단어가 사용되면, 문자 그대로 세어본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히 아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사울에게 쫓겨 이러 저리 유리하는 다윗을 하나님은 정확하게 알고 보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은 다윗의 눈물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병에 담으시듯, 완전하게 다윗의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다윗에게는 이런 확신이 있습니다.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는 표현은 “그렇다! 기록하여 놓으셨다.”는 것이지요. 다윗은 “내 고통과 고뇌가 다 하나님께 알려졌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 “내가 아뢰는 날에”라는 표현은 3절의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이란 표현과 대조가 됩니다. 다윗의 두려워하는 그 날이, 바로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는 날이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언제나 그렇지 않습니까? 성도에게는 두려운 날이 그저 두려운 날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도는 그날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더 나아가,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안다’는 말은 개인적 경험을 통한 지식인데, 이 지식은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확신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신실하게 행하셨기 때문에 얻게 된 확신 곧, 말씀으로 확증된 확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선언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로마서 8:31).”
이제 다윗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찬송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10-11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편 56:10–11).”
4절의 후렴이 조금 더 확장되어 반복된 것입니다. 다시 다윗은 묻습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그 사람들은 당장 원하면 다윗의 생명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음은, 그 모든 원수들보다 크고 강하고 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을 열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고백하는 말은(3), 사실 이런 말입니다. “내 앞에 나를 두렵게 하는 사람들이 나를 압도할 때에, 나는 믿음의 눈을 열어 그들을 먼지와 흙처럼 여기실 크고 능하신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본다.”


4. 감사와 서원, 그리고 두 개의 현실 (12-13)
이제 다윗의 마음은 두려움에서 평안으로 옮겨졌습니다. 다윗은 원수들을 낮추어달라는 자신의 간구가 이미 응답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서원을 갚는 감사제를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13절입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시편 56:13).”
다윗은 더 이상 자신을 종일 짓밟는 원수들 앞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다윗은 여전히 1-3, 5-6절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 ‘하나님 앞, 생명의 빛’ 앞에 서 있습니다. 두 상황이 모두 현실입니다. 하지만, 다윗을 지배하는 영적 현실은 ‘생명의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사는 현실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모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의 자리, 순교의 자리에서 경험한 바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두 개의 현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적 현실이 그들의 물리적 현실을 지배했고 압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두 개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물리적 현실이 영적 현실, 생명의 빛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현실에 압도당하고 맙니다. 다윗은 이렇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는 물리적 현실에서 영광스러운 믿음의 현실로 옮겨가는 것이 믿음의 삶임을 보여줍니다.


5.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시편 56편에 기록된 다윗의 현실은 우리 모두 겪고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믿기 전에는 하나의 현실 밖에 없었지만, 믿음이 들어온 뒤, 성도는 두 개의 현실을 살아갑니다. 문제는 J.B.필립스가 쓴 책의 제목처럼,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Your God is too small)”는 것입니다.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의 왕권 앞에 선 다윗은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을 것이고, 그래서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날에 주를 의지하자,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에 약속하신 대로 신실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이 믿음의 눈을 뜨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가드 왕 아기스 보다 크고 능하신 하나님,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신자는 이렇게 자신이 어떤 형편, 사정, 환경에 놓여있든지 무관하게 생명의 빛이 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두려움에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그 주님을 의지하고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성도에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아십니까? 기도는 우리가 믿음의 눈을 열어 크고 능하신 하나님을 보는 방법입니다.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가는 도약은 하나님과의 소통, 곧 기도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