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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 (14) - 기름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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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 (14) - 기름부음

요한일서 2:18-21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6-05-29

말씀내용
우리는 지난 주일에, 사도가 지금은 마지막 때라고 말한 의미를 상고했습니다. 사도가 말하고, 또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마지막 때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택한 백성의 구속을 이루시고 승천하신 후부터 재림 때까지라 했습니다.
마지막 때라는 것은 특별히 하나님 나라와 깊이 연관되는데,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며, 이 하나님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초림 때 시작되었고 지금도 이루어지는 중이며 마지막 주님 재림 때에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 때 이미 결정된 문제입니다. 이것을 세계 제2차 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비유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18절에서 사도는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판단하는 근거로 적그리스도(들)의 출현을 제시합니다.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궁극적인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활동할텐데 이미 활동하고 있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그런데 이 논지는 그저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사도가 편지를 쓸 당시 교회 성도들이 겪고 있던 현실이었습니다. 교회는 큰 분열을 겪었고 교회의 지도자들을 포함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가 잘못된 교리, 잘못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비난하면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제 교회에 남은 사람들은 불안해졌고 교회 안에서의 교제도 흔들렸습니다. 사도는 이들에게 개인적으로는 구원의 확신을 주고, 공동체적으로는 사귐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려고 이 편지를 썼습니다.
이런 가운데 19절은 하나의 폭탄선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이미 일어나서 활동하고 있는 적그리스도들은 바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 특별히 거짓 교사들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직선적인 지적입니다. 교회를 흔들어놓고 나간 그들이 바로 적그리스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조심해서 듣고 적용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를 떠나면 다 적그리스도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교회를 어지럽히고 떠난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주장, 즉 교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가지고 계실 수 없다고 믿었고 주장했으며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헬라 철학의 이원론이 그들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성육신과 육신으로 죽으셨고 육신으로 부활하신 모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단이었습니다. 그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려고 교회를 흔들어댔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주장이 먹히지 않고 교회가 자신들의 손 안에 들어오지 않자, 교회를 흔들 수 있는대로 흔들고 떠난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단 교리를 옳다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흔들고 나갔기에, 사도는 이들을 적그리스도들이라고 명백하게 지적하여 말한 것입니다. 지금 사도는 특별한 의미에서의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시대나 이런 적그리스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칫 경솔하고 교만하고 쉽게 판단하고 자의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이 구절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1. ‘우리’ 대 ‘그들’
사도는 본문에서 ‘우리 대 그들’의 구도로 말합니다. 교회에서 나간 자들은 그들이 처음부터 교회에 속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만일 본래부터 우리에게 속했다면 그들은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나갔습니다. 우리에게 속했다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했듯이, 그리스도께 속했고, 참된 교회에 속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교회이고 그들은 적그리스도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갔느냐가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가 겪은 이 어려움은 결국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편이었습니다.
‘우리 대 그들’이라는 구도에서 사도가 말할 때, 이것은 두 개의 중요한 교리와 연결됩니다. 하나는, 성도의 견인 교리이고 또 하나는, 교회의 본질에 관한 교리입니다.

A. 성도의 견인 교리
이 구절이 성도의 견인 교리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지체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였다면 그들은 교회를 떠나지 않고 인내하며 교회에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궁극적 운명에 대해서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 중에 얼마는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고 주장하고 가르치는 그 교리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그 거짓 진리로 깨뜨리려고 했으므로 적그리스도들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구원받은 참된 성도는 자신의 신앙의 참됨을 어떻게 드러내겠습니까? 오해하지 말고 잘 들으십시오. 참된 신앙은 언제나 열심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열심과 헌신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신앙의 표지는 끝까지 견디는 인내입니다. 인내는 구원받은 성도의 보증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인내를 성도의 믿음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2).”

B. 지상교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다.
두번째로 19절은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대로(마 13:24~30)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함부로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려고 하는 것은 주님도 금하신 일이었으므로 조심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1566년에 작성된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참된 교회의 지표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좁게 보고 다음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즉, 고의적으로 성례를 멸시하지 않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본의 아니게 성례에 참석하지 않거나 못하게 된 사람들, 비록 때로는 믿음에서 떨어질지라도 완전히 없어지거나 아주 믿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들이나 혹은 연약하기 때문에 불완전함과 잘못을 노출하는 사람들은 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로 간주하지 않는다 …. 자기의 주인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방황하거나 연약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신실한 백성에게 날마다 어떤 일이 있어 왔는지 우리는 안다. 그리고 사도 시대의 갈라디아와 고린도에 있던 교회들이 어떤 교회였는지 우리는 안다. 사도 바울은 그들 교회에서 심각한 범죄를 동반한 결점들을 발견하였으나, 그럼에도 그는 그 교회들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라고 부른다(고전 1:2, 갈 1:2)”(17장 14항).
그러나 참된 믿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에 언제나 있다는 사실은 늘 기억해야 합니다.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에서 인용합니다: “교회의 지체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이 다 성도, 즉 살아 있는 진정한 교회 지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만 듣고 사람들 보는 데서 성례를 받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같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유일한 의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을 베푸는 의무를 수행하며, 불행 중에서 한 때는 참음으로 견디는 것처럼 보이는 위선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적으로 성령의 참 조명을 받지 못하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믿음과 진실함과 끝까지 이르는 견인을 갖지 못하고 있다.”(17장 16항)..
가라지의 존재가 교회가 참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목사든 교인이든 낙심하거나 힘들어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지금은 은혜를 입지 못했을지라도 주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음으로써 거듭나는 은혜를 주실 것을 기대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로 인하여 말씀 사역과 교회의 거룩함에 장애가 되거나 교회가 약화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목사는 더욱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전심으로 감당해야 하고, 또 다른 은혜의 방편인 성례를 성경의 말씀에 입각하여 바르게 시행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성도들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아 나태해지거나 영적으로 방종하게 되지 않게 올바른 권징을 시행해야 하는 것도 목사와 장로의 직무입니다. 교회가 언제나 적그리스도 즉 교회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맨 땅에 세우는 차원의 일이 아니라, 대적하고 우리가 힘써 세운 것을 무너뜨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2. 기름부음
제가 지난 주일 설교를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질문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런 질문들이었지요. 무엇이 여러분을 지금 진리에 붙어있게 만들었습니까? 이단과 사이비가 속출하는 시대에 여러분을 지금 바른 진리 가운데 속하도록 여러분을 지켜준 요인은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기름부음이라고 사도는 말합니다. 20절입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기름부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은 오늘날의 교인들도 많이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먼저 잘못된 오해들을 몇 가지 보도록 하지요. 이것은 직접 계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직통 계시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기들의 주관적 상태와 상황을 근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기 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더 치중하게 되는 위험한 자리로 가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가르쳐주시니까 나는 삶과 경험에서 성경을 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또 성령님이 말씀하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이것은 틀림없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것은 극단적 주관주의로 가는 잘못입니다. 기름부음은 이런 자세와 태도들을 합리화해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사도가 지금 기름부음이라는 말을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는지 보십시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사도는 참된 신자의 적극적인 표지로 기름부음을 말합니다. 기름부음이 있어서 어떻다는 겁니까? ‘모든 것을 아느니라’고 했지요? 사실, 여기 ‘모든 것을 아느니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엄밀하고 정확하게 보면 ‘(기름부음을 받은) 너희 모두가 아느니라’는 의미입니다. ‘모든’이 뒤에 목적어에 걸리지 않고 주어에 걸리는 겁니다. 즉, 기름부음이 무엇이냐? 본문이 말하는 기름부음은 지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어떤 지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참된 신자는 누구나 다 어떤 지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분히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 자기들이 어떤 신비한 지식을 얻음으로써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사도가 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여기에 거룩하신 분으로부터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참된 지식이 있다는 겁니다.

A. 성경적 배경
이 말이 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기름부음은 거룩한 목적을 위해 어떤 사람?선지자, 제사장, 왕?이나 물건들?성막이나 성전에 있는 거룩한 기구들?을 따로 세우고 성별하는데 사용된 말입니다(출 29:7; 30:25; 40:15; 단 9:26). 그런데 이 말은 성령을 받는 것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 사무엘상 16:13을 보지요.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것은 나중에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시는 것과도 관련이 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말이 동사형태로 5번 등장하는데, 네 번이 예수님께 대해서(눅 4:18; 행 4:27; 10:38; 히 1:9), 그리고 한 번은 성도에 대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것을 두 구절만 살피면, 사도행전 4:26과 10:38입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행 4:27).”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여기서 우리는 기름부음이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는 것과 관련된다는 것을 봅니다. 이 말은 성도에 대해서도 사용됩니다. 고린도후서 1:21입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이것이 이 단어를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의 배경입니다. 그리고 명사형태로 사용된 경우가 요한일서에만 3번 나오는겁니다(27절에 두 번). 여러 의미를 종합할 때, 기름부음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질적 개념으로 기름을 바른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신다는 영적 의미이고 더 단순하게 말하면 믿고 성령을 받은 것, 거듭남과 성령의 내주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다일까요? 27절을 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0절 말씀과 함께 이 구절을 본다면, 기름부음은 어떤 지식을 가지는 것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기름부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게 되는 것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종합하면, 기름부음은 두 가지 요소, 즉 성령과 진리(하나님의 말씀)에 상관된다는 것입니다.

B. 성경과 성령은 함께 한다.
정리하면,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 지식,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의 지식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6을 보겠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씀이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임하였는지 설명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그리고 기름부음이라는 이 말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 날 밤,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 곧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성령님을 진리의 영으로 소개하십니다. 요한복음 14:17과 15:26 그리고 16:13을 보십시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7).”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성령님은 진리의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세상은 능히 그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거듭난 그리스도인만 자기 안에 거하시는 그분을 압니다. 또 요한복음 14:26을 보십시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은 또한 가르치는 분이십니다. 성도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신앙의 명제를 확립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객관적 진리의 말씀이 신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내적 증거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으로 다시 돌아오면,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라고 합니다. 여기 ‘거룩하신 자’는 누구입니까? 물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모두를 지칭한다고 봐도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사도 요한이 ‘거룩하신 자’라고 쓸 때의 용례나(요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27절을 볼 때,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을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완전하게 성취하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견지에서도 그러합니다(엡 4:8; 행 2:33).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기름부음과 성령의 충만함과 은사를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20절의 뒷부분, “모든 것을 아느니라”를 다시 잠깐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앞에서 이 말이 본래 “너희 모두가 아느니라”를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린도전서 2:13~14에서도 동일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닫는 영적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어지럽혔던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몇몇의 선택된 소수만이 가지는 지식이 아닙니다. 사도는 “성령을 받은 모든 모든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안다”고 말합니다.

사도는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21). 흔들리는 신앙을 확실하게 붙잡아주고 싶어하는 사도의 심정이 여기 잘 나타납니다. “너희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구별된 사람들이며 참 진리의 지식을 가진 자들이다. 너희가 진리를 아는 자들이기 때문에 나는 이 편지를 쓴다. 기억해라.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적그리스도들이다.”사도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른 진리,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3.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라.
먼저 우리는 이 말씀에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볼 것을 요구받습니다. 내가 참으로 교회에 속한 자인가를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의 표지가 여기 제시됩니다.나는 다른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과 참된 교제를 가지기를 갈망하고 나누기를 힘쓰고 그렇게 하고 있는가? 나는 다른데 서는 경험할 수 없는 깊은 결속을 참된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과의 만남 속에서 경험하는가? 내 삶은 교회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자신이 참된 교회에 속한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질문들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십시오. 그리고 참으로 교회에 속한 자라면 더욱 힘쓰십시오. 그리고 내가 참으로 교회에 속한 자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두번째로 우리 신앙을 점검하는 시금석은 내가 참된 지식, 진리에 이르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바른 지식이 있는가? 단순히 이것이 머리로 가진 지식이 아니라, 나는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인가? 성령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영적 지식을 가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나는 알고 누리고 그 은혜 안에서 참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가? 혹시 여러분이 그저 머리로 이해하고 깨닫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까? 오, 자비하신 주님께, 성령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으니 성령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심령에 오셔서 계시고 떠나지 않으시는 성령님께서 이 지식을 가슴으로 깨달아 알고 은혜를 경험하게 해주시도록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는 참된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고 경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여러분 모두가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하고 하나님께서 벧샬롬교회를 복된 교회로 세워가시기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