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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6. 주님께서 바라시는 교회) - (7). 열린 문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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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6. 주님께서 바라시는 교회) - (7). 열린 문으로 나아가라

요한계시록 3:7-13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6-02-14

말씀내용
1. 작은 능력으로 말씀을 지킨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칭찬만 들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의 극렬한 반대를 겪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고 칭찬하시면서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8). 이것은 빌라델비아가 당시 헬레니즘을 동방으로 전하기 위한 관문 도시의 역할을 하던 것을 배경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문화적으로, 빌라델비아는 헬레니즘을 동방으로 전파하기 위한 열린 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교회가 하늘을 향하여 열린 문이라고 보셨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라는 책망을 들은 사데 교회는 분명히 열린 문은 아니었습니다. 그 교회는 예수님을 믿으려고 갔다가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지옥으로 갈 수 있는 교회였을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에게 유명했고 상당히 알려진 영향력 있는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반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작은 능력 밖에는 가지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작은 능력’이라는 말은 그들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이나 명성, 재정적 능력, 교인들의 숫자 모든 것들에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내세울게 별로 없는 교회였습니다. 외부의 적대적 세력들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켜냈고 외부의 배교의 위협도 견뎌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의 행위를 정확하게 아셨고 인정하셨습니다.

2.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그리스도와 열린 문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시는 내용에서 핵심단어가 무엇일까요? ‘문’이란 단어입니다.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십니다(7). 또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8).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열어두신 문을 닫을 자는 없습니다. 모두 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언급하신 문, 특별히 열린 문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로써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시는 것일까요? 또 이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 교회에는 어떤 메시지일까요?

A. 기도의 문(계 4:1)
본문이 의미하는 열린 문의 의미는 가장 가까운 본문에서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4:1입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편지가 마치고, 사도 요한이 본 장면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여기서 열린 문이 다시 등장하는데 그 의미는 하늘을 향하여 열린 문,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열린 문입니다. 이것이 아마 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신 열린 문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일 것입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네가 하나님께 언제라도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늘 보좌를 향하여 열린 문을 네 앞에 두었으니 그 문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라. 내가 열어둔 그 문은 아무도 닫을 자가 없다.” 이런 의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얼마나 축복된 교회입니까? 그 교회는 하늘을 향하여 열린 문, 주님이 열어놓으신 문이 있는 교회입니다. 이 문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 피로 우리를 위하여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히 10:19,20). 하늘을 향하여 열린 문은 모든 참된 교회의 특징입니다. 세상 어디서도 하늘을 향한 열린 문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데 교회처럼 죽은 교회에는 열린 문 대신 닫힌 문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존전에 이르는 문이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언제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배를 드릴 때, 그들의 예배는 이 열린 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죄인은 열린 문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하늘을 향해 열린 문이 있습니까? 그 열린 문으로 우리의 예배와 기도와 찬송과 섬김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 올라가는 교회입니까? 주님께서 그런 복된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구합니다.

B. 구원의 문
그러나 이것이 열린 문의 유일한 의미는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씀들을 통해서 볼 때, 열린 문은 또한 구원의 문입니다. 이것은 앞의 설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늘을 향하여 열린 문이라면, 그것은 곧 구원의 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그런 교회를 봅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자의 수를 더하게 하셨던” 교회(행 2:47), 즉 구원의 문이 열려 있는 교회입니다. 이 구절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교인수가 늘고, 방문자가 늘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구원받는 자, 회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님께서 주신 말씀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더 많은 재정입니까? 더 효과적인 프로그램들입니까? 더 많은 목회자입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좀 더 편리하고 넓은 건물이나 주차장입니까?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회심자들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많은 점에서 부족하고 연약할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문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저희 교회에 열린 문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날마다 회심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자들이 더해지는 역사를 주시옵소서.”

C. 섬김의 문
주님께서 말씀하신 열린 문의 의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 달렸으니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기도하고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태도가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열린 문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또한 섬김의 문, 봉사의 문을 의미했습니다. 마크 피어스(Mark G. Pearce)는 “어떤 사람의 믿음이 자신을 이기심으로부터 구원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삶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자신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원하는 믿음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참으로 거듭나서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그의 눈은 또 하나의 열린 문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섬김의 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더 이상 자기가 인생의 모든 목적이 되고 초점이 되는 삶을 지속해갈 수가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계속 전과 같이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그 믿음은 의심해보아야 마땅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 참으로 구원의 열린 문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인생관은 변합니다. 그들의 삶의 초점은 자신으로부터 하나님과 이웃에게로 옮겨갑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관점, 시각의 변화입니다. 물론 수 없이 넘어지지만 이 변화는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변화입니다. 섬김의 문은 다른 사람들이 하늘을 향하여 열린 문, 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갔다면, 우리가 만일 구원의 열린 문을 통하여 들어왔다면, 우리는 또한 섬김의 문, 이웃을 섬기는 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바울 사도는 복음 전도를 여기 연결시켰는데, 복음 전도는 성도의 이웃 사랑과 섬김의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문도 주님이 열어주셔야 하는 문이기에, 바울 사도는 이렇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골 4:3).”

3. 그리스도: “나는 양의 문이다”(요 10:7,9)
그러나 여러분, 성경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에 대한 말씀을 생각할 때,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요 10:7).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말씀하신 열린 문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피를 흘려 열어놓으신 문이지만, 우리는 주님 자신이 바로 그 열린 문 자체였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와야만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문은 언제까지나 열려있는 문은 아닙니다. 언젠가 이 문은 닫힙니다. 사실상 주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도 문에 얽힌 말씀이 적지 않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을 충분히 준비했기에 신랑이 오는 새벽에 신랑을 맞이하고 열린 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 그 문은 닫히고 맙니다. 열린 문은 언젠가는 닫힙니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의 사건으로 우리에게 먼저 찾아옵니다. 수많은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열린 문이 닫히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양의 문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문으로 들어오기를 거절한다면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그 문이 닫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것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모든 권세를 행할 주권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우리가 교회의 열쇠를 가진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 문의 열고 닫힘에 관한 모든 주권은 전적으로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문제, 그리고 우리가 섬길 이웃들의 구원의 문제는 전적으로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주님이 그 열쇠를 갖고 계시다 함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고 이웃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께 나아가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그 문의 열쇠는 주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4. 대적이 많기 때문에 열어 주신 문(고전 16:9)
그런데 특이한 게 있습니다. 열린 문을 주셨다고 하면 뭔가 순탄대로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막상 그 다음의 말씀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주님은 사탄의 회,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실상은 거짓말 하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9). 서머나 교회처럼 이들에게도 유대인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실상은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열린 문이 있다는 말은 대적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대적이 많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에서 에베소에서 경험한 일에 대해서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 썼습니다(고전 16:9). 유효하다는 말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전도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아주 넓은 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무엇입니까?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실상 주님이 하시는 일은 이렇습니다. 대적이 많은데도, 열린 문을 열어주사 그 많은 대적들 속에서도 많은 자들이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셨지만 이들에게는 대적, 즉 사탄의 회인 유대인들의 반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대적하는 유대인들 중에서도 몇을 교회에 주어 그 발 앞에 절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9). 이것이 바로 열린 문의 증거입니다. 비록 지금은 너희의 대적이 기승을 부리지만 너희가 인내함으로 기다리면 내가 너희 대적 중에서 네게 무릎 꿇는 자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오히려 대적이 많은 것은 열린 문의 증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왜 대적이 그렇게 방해를 하고 힘을 빠지게 하고 낙심하게 하겠습니까? 거기에 열린 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으니까, 마귀가 기를 쓰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의 열쇠는 주님께 있기에 주님께서 열어 두신 문을 마귀가 닫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대적 중에서도 택한 백성을 열린 문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결과를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증거로 삼겠다고 하십니다(9b).

어쩌면 빌라델비아 교회 안에는 교회를 향한 유대인들의 적대감이 극심하므로 강력한 복음 선포나 전도로 말썽을 빚지 않는 게 좋다고 여기는 온건파들의 주장이 있었을 지 모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작은 능력’은 더더욱 복음 전파의 짐을 지지 않으려는 수많은 핑계들을 만들어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아직 재정이 약하다, 우리는 인적 자원이 적다. 우리는 아직 대적이 많다”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을 상고할 때, 우리는 장애물이 많을 때, 그리고 대적이 많을 때 더 열심으로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앞에 열린 문을 두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많은 장애물과 수많은 대적들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5. 약속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이기는 자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약속을 주목해보겠습니다. 세 가지의 약속을 주십니다.

A. “내가 너를 지켜”(10)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작은 능력만 가지고도 인내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도 저들을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데, 이 시험은 이제 요한계시록에서 설명될 많은 환난의 시기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기 “내가 너를 지켜”라는 주님의 약속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격려였을 것입니니다. 그들 자신이 가진 능력이 작아서,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의 안전 보장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 벧샬롬교회도 작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가진 대단한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작은 능력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인내하십시오.

B. “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12)
주님께서는 또 “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고”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12). ‘다시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빌라델비아는 화산 지역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지진의 위협을 늘 받던 도시였습니다. 실제로 주후 17년의 대지진은 도시 전체를 황폐화 시키기도 했습니다. 지진의 위협이 있을 때마다, 빌라델비아 사람들은 바깥 지역으로 피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나가는 일이 없게 하시겠다고 말입니다. 이것도 불안과 두려움을 가질 수 있는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주시는 안전의 약속입니다.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빌라델비아에서는 이방 신전의 제사장들이 죽으면 그를 기념하려고 성전에 그를 상징하는 기둥이 하나씩 추가되곤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죽어서도 성전을 떠받드는 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 신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영예로울 수 없는 주님의 칭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긴 자들의 수고를 주님께서 갚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기왕에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신다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여러분의 삶에 주어지도록 섬기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기억해주시는 수고를 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주의 일을 건성으로 하거나 대충 사람을 의식해서 하지 마십시오. 벧샬롬교회가 주님의 몸이기에, 살아서 교회를 섬길 때에도 교회의 기둥과 같은 존재로 교회를 섬기는 자리에 서십시오. 섬김의 열린 문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C. 이름, 이름, 이름(12)
주님의 세 번째 약속은 이름에 대한 언급이 두드러집니다. 세 가지 이름을 이기는 자의 위에 기록한다고 하십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둘째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고 셋째는 주님의 새 이름입니다. 첫째와 셋째는 바로 이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이름이고, 그들의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증거해줍니다. 새 예루살렘의 이름은 승리한 교회의 영광스러운 이름인데 이 이름을 지금 피 튀기는 전쟁터를 사는 이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지금 전투하는 교회로 살아가면서 많은 피흘림과 상처를 경험하겠지만, 결국 주님은 이런 교회를 승리한 교회로 취급하신다는 것입니다.

6. 적용과 도전

A. 문은 열려있으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된 사람들이 부족하다(마 9:37~38).
빌라델비아 교회는 참 귀한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그들 앞에 두신 열린 문은 대적들 조차도 회개하게 하는 문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대적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교회였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문이 열려 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는 비록 작은 능력을 가졌어도 그 말씀을 끝까지 인내함으로 지키고, 이런 저런 이유로 자기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 주님의 교회들을 향하여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라고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열린 문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기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과 출세와 명성을 잃어버릴 위험을 무릅쓸 사도적인 열정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열린 문은 많으나 그 문을 통과하여 나아가는 자들은 심히 적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계십니까? 여러분은 구원의 열린 문으로 들어와 섬김의 열린 문을 통과하여 복음의 진리로 악의 세력과 맞서는 믿음의 자리에 서계십니까? 우리 교회는 열린 문을 통하여 그 자리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B.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 같은 자: 열린 문으로 나아가자!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맙시다.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이 자리에서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는 벧샬롬 공동체에 속한 우리 모두가 다 이런 축복을 얻기를 바랍니다.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구원의 열린 문을 지나 섬김의 열린 문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깁시다. 이기심의 포로로 살아가는 닫힌 문으로 향하는 삶을 내어던지고 하나님의 교회에 기둥 같은 삶을 삽시다.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열린 문으로 나아갑시다. 주님께서 오실 때, 약속하신대로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 같은 자로 세워주실 날을 바라봅시다. 영원한 영예, 주님이 주시는 영광을 구하며 이 세상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그 약속을 받는 저와 여러분, 우리 벧샬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