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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10).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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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10).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요한계시록 2:1, 3:22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9-10-06

말씀내용
이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계 2:1; 3:22).
이제 우리는 2장과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편지를 상고할텐데, 그 편지를 하나 하나 살피기 전에, 먼저 이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1. 일곱 교회의 정체와 의미
2-3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일곱 편지의 수신자로 지목된 일곱 교회는 모두 당시 실존하는 교회들이었습니다. 일곱 교회가 소재하고 있는 각 도시들은 소아시아의 내부순환도로를 따라 도착할 수 있는 주요 도시들이라고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도시들은 에베소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라오디게아까지 순환도로를 따라 갈 수 있는 지역들이었습니다. 이 도시들은 소아시아 중서부의 우편배달구역의 중심지들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합니다. 도시와 도시 사이는 48km에서 80km 정도 거리이고, 전체 총 길이는 500km가 넘습니다. 이 교회들이 실재하는 교회들이었다는 사실은, 각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이 다루는 내용에서 더 확실해지는데, 1세기 말의 황제숭배라든지, 헬라 종교들, 핍박과 환난, 이단의 위험, 세상과의 타협 등 당대 신자들이 직면한 어려움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물론 일곱 교회가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모든 교회들은 아닙니다. 이 목록에는 없지만, 히에라볼리나 골로새 등에도 교회는 존재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많은 상징을 사용하는 묵시문학이라는 점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로 모든 시대, 모든 교회를 포함하는 개념을 의도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곱 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해서, 교회 역사의 시대를 순서적으로 묘사했다고 이해하는 소위 고전적 세대주의가 있습니다. 이들은 에베소교회에서 라오디게아교회로 이어지는 일곱 교회의 순서는 교회사의 모든 시대를 일곱 시대로 나누어 각 시대의 교회상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가령, 첫 교회인 에베소교회는 사도들이 살던 1세기의 초대교회를 상징하는데, 처음에는 부흥을 경험하지만 나중에는 사랑과 열심이 식은 교회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둘째로 서머나교회는 4세기 초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로마 황제들에 의해서 박해를 받던 300여년을 가리키고, 세 번째인 버가모교회는 콘스탄틴 황제의 공적 후원을 받기 시작하여 4-5세기 교황권이 형성되는 시기의 교회로 봅니다. 네 번째로 두아디라교회는 교황 시대로부터 15-16세기 종교개혁에 이르는 중세시대를 의미하고, 사데교회는 16-17세기를 지내며 종교개혁 이후 생기를 잃은 시대의 교회를 나타낸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교회는 많은 부흥이 있었던 18세기와 세계 복음화가 놀랍게 진전된 19세기의 교회를, 끝으로 라오디게아교회는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배교가 증가하는 시대의 미지근한 교회를 상징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역사해석의 관점에 기초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곱 교회에 주시는 그리스도의 편지의 내용들과 특징들을 살펴보면, 이 순서가 하나의 구조를 가지고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2. 교차대구/대칭교차법(chiasm)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주는 편지의 문학적 구조를 살펴보면, 일곱 교회의 나열은 무작위의 배열도 아니고, 단지 순환도로상에 위치한 순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배열 방식이 보여주는 구조를 수사학적으로 교차대구법 또는 대칭교차법(chiasm)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중심을 기준으로 앞뒤로 대칭을 이루는 쌍을 배열하는 방식입니다. 직접 일곱 교회의 배열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곱 교회의 배열 순서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의 순서입니다. 먼저 일곱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첫째와 일곱째 교회는 에베소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인데, 이 두 교회는 비슷한 문제로 책망을 듣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듣고(2:4) 라오디게아교회는 미지근하다고 책망을 듣습니다(3:15). 이 두 교회가 책망을 받는 문제는 심각한 것으로서, 촛대를 옮기시겠다(2:5)고 하시고, 또 토하여 버리겠다(3:16)고 경고하십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고, 뜨거운 열심을 버림으로써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과 끝인 에베소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는 비슷한 문제로 책망을 듣습니다.
거기서 하나씩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면, 에베소 다음에 서머나교회가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 앞에 빌라델비아교회는 위치합니다. 이 두 교회의 특징은 어떤 책망도 듣지 않고 칭찬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모든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에 충성스러웠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늘날 지역교회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은 거의 이 두 교회 뿐입니다.
이제 이 둘러싸고 있는 네 교회의 중심에는 세 교회가 있습니다. 순서대로, 버가모, 두아디라 그리고 사데교회입니다. 대칭교차법의 중심에 있는 이 세 교회는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로 순서가 진행될수록 상태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버가모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고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도 있다고 책망을 받습니다(2:14-15). 이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두아디라교회가 있습니다. 두아디라교회는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 허용함으로 교회 안에 받아들여주었습니다. 이것은 그 정도가 버가모교회보다 더 심각함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에 사데교회는 타락의 정도가 가장 심각한 교회입니다. 주님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3:1).
중앙에 위치한 세 교회 모두 심각하게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들이고, 이를 중심으로 한 단계 밖으로 향하면 아름답고 칭찬받는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가 나옵니다. 또 한 단계 밖으로 향하면, 에베소와 라오디게아교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정체성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로 책망을 듣습니다.
많은 현대 학자들은 본문이 이런 대칭교차법 구조로 배열되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상당히 많이 사용되는 수사법인데, 특히 시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이런 서술방식을 볼 때, 우리는 결코 이 일곱 교회의 배열이 의도된 배열일 뿐 아니라, 모든 시대, 전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일곱 메시지라고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1장과 2-3장의 관계
또 하나, 우리가 2-3장을 상고할 때 주의할 것은, 1장과 2-3장의 관계입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의 2-3장은 해석의 난해함이 가장 적은 본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많이 설교되는 본문이 바로 2-3장입니다. 하지만 이 본문을 전체의 맥락에서 뚝 떼어서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2-3장은 1장에서 요한이 본 영광의 그리스도 환상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3주간에 걸쳐 요한이 본 영광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환상을 상고했습니다. 1장 12절에서 20절이지요. 영광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다양하게 묘사되는 이 본문은 사실, 2-3장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2-3장에서 일곱 교회에 보내는 각 편지의 서두에 나오는 주님 자신에 대한 묘사가 요한이 앞에서 본 그리스도의 환상의 한 면 한 면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면, 2:1에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본 주님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가지고(1:16,20) 일곱 금촛대 사이에 계신 분이었습니다(1:13). 서머나교회는 어떻습니까? 2:8에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묘사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고 말씀하신(1:17-18) 환상에 근거합니다. 버가모교회의 경우에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십니다(2:12). 이것은 요한이 본 바,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라고 한 말씀(1:16)을 반영합니다. 네번째로 두아디라교회입니다. 여기서는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십니다(2:18). 이 또한 요한이 본 환상 중에,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라는 묘사와 동일합니다(1:14b-15a). 사데교회에게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일곱 영은 요한이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기 전, 은혜와 평강의 원천이신 성 삼위 하나님을 묘사할 때, 성령님을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라고 묘사한 것을 가리킵니다(1:4). 또 ‘그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라는 그리스도 묘사와(1:16) 결합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빌라델비아교회에게는 주님께서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십니다(3:7). 이 묘사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사용한 것입니다(1:18). 끝으로 라오디게아교회를 보십시오. 주님은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라고 하십니다(3:14). 이것은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라는 말씀과 만납니다(1:5).
왜 주님께서는 편지의 발신자로서 당신 자신을 이런 다양한 묘사들로 표현하셨을까요? 그 각각의 묘사는 주님께서 그 교회에 주실 메시지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각각의 편지를 개별적으로 상고할 때,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1장은 2-3장의 서론격, 도입부로서 깊이 연결된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일곱 편지의 패턴과 구성
이제 이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편지의 패턴 혹은 구성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각각의 편지는 완전히 동일한 형식은 아니지만, 형식에서 일종의 패턴을 보여줍니다.
먼저 수신자인 각 교회의 이름이 나옵니다(2:,8,12,18; 3:1,7,14). 가령,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하는 형식은 일곱 편지에서 모두 동일합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수신자는 각 교회의 ‘사자’입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앙겔로스’인데, 천사 혹은 심부름꾼이나 메신저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사자’를 해석하는 견해가 크게는 두 부류로 나뉜다고 했었지요? 일부는 사자를 천사, 즉 그 교회를 천상에서 돌보는 천사를 가리킨다고 이해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교회에 세우신 목회자를 가리킨다고 이해합니다. 저는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하실 때,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보내는 편지로 읽기 보다, 에베소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에게 보내어 온 교회에 읽게 하는 편지라고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읽어주고 밝히 그 뜻을 드러내는 것은, 주님께서 모든 교회에 세우신 목회자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점에서도, 사자를 목회자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합당합니다.
두번째로는, 조금 전 우리가 살펴본대로, 편지를 보내는 발신자로서 주님의 정체성에 대한 묘사가 요한이 본 그리스도 환상을 반영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서술됩니다.
세번째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칭찬과 책망 그리고 신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물론 서머나와 빌라델비아교회는 아무 책망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고는 매우 무서운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네번째, 경청하라는 명령 혹은 권면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7,11,17,29; 3:6,13,22)”이 권면은 앞의 세 교회와 뒤의 네 교회에서 약간의 위치 변화가 있습니다.
다섯번째, 격려와 약속이 있습니다. 인내할 것을 격려하고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급을 약속합니다.

5.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항구적 명령
이제 오늘 말씀의 적용적 교훈을 생각하겠습니다. 2-3장의 본문에 기록된 일곱 교회에 주시는 그리스도의 편지에는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에게 주시는 항구적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제임스 해밀튼(James M. Hamilton Jr.)가 한 문장으로 잘 정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위하여 열심을 내고, 거짓 가르침을 거절하고, 복음에 합당한 방식으로 살라고 모든 교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A.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궁극적 목적과 존재 이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단지 교회의 성장이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식구들의 편의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에 열심을 내고, 거짓 가르침을 경계하여 물리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듯이, 벧샬롬교회는 이것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그 피로 교회를 세우심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하신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고자 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온 세계 위에 높임을 받으시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이 큰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는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맙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과 모든 단체가 구성원들의 이익을 도모하고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늘 하나님의 뜻을 묻고 행해야 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우리 공동체의 예배와 교제와 말씀 공부와 봉사와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끼리 좋자고 교제하는게 아니며, 보람이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교회 공동체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그래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장, 일, 공부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가을에 세 커플의 청년들이 결혼할 예정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왜 결혼합니까? 사랑하니까? 더 행복하기 위해서? 아닙니다. 결혼의 가장 근본 되고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자녀들을 공부시키는 것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좋은 대학 보내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것이 신자와 교회의 부르심이라는 이 근본적인 사실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진리를 잊지 맙시다.

B. 복음을 위하여 열심을 내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은 교회에게 세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먼저 복음을 위한 열심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열심 말입니다. 여러분의 열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복음을 위한 열심을 가졌습니까? 그 열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까? 에베소교회에게 처음 사랑을 버렸기에 회개하지 않으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하셨고(2:5), 라오디게아교회에게는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6). 두 교회 모두 뜨거움을 잃었고 열정과 열심을 잃은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복음을 위한 뜨거움이고 열정이며 열심입니다. 다른 일에 열심이 없는게 아닙니다. 자기 일에는 열심을 다합니다. 그것을 할 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위해서는 의지도 없고, 힘도 없고, 열심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혹시 복음을 위한 열심이라는 것이 고작 주일 아침에 공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까? 예배와 주의 말씀을 배움과 형제들과의 복음 안에서의 사귐과 주의 교회를 향한 열심이 과연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여러분, 복음과 교회를 소홀히 여기지도, 냉담하게 대하지도 마십시오. 왜냐하면 복음은 주님의 복음이고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지옥에 가지 않을만큼의 최저선을 지키면서 “나는 신자라,”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며 살아가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복음을 위하여 열심을 내라는 것은 목사의 권면이나 잔소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영원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벧샬롬교회는 복음을 위해 뜨거운 열심을 가진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C. 거짓 가르침을 물리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이 교회에게 명하시는 두번째 것은, 거짓 가르침을 경계하고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거짓 가르침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만이 아니라, 멀쩡한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가르침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번영신학의 암덩어리가 한국교회의 강단에 너무나 많이 퍼져있습니다.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교회들처럼, 너무나 많은 거짓 가르침과 교훈들이 교회 안에 버젓이 들어와 있고, 또 그런 거짓 가르침들을 허용해오기까지 했습니다. 사데교회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어도 실상은 죽은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20세기 중반, 필라델피아 제10장로교회를 목회하던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Donald Gray Barnhouse)는 이런 도발적 상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탄이 한 도시를 완전히 장악하면 어떤 모습일까?”그의 대답입니다.
“사탄이 필라델피아를 장악한다면, 술집은 모두 문을 닫을 것이고, 도색물들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깨끗해진 거리는 서로 웃음을 머금은 보행자들로 가득 찰 것이다. 저주와 악담이 사라질 것이다. 교회는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 없는 그 자리는 다른 거짓된 가르침들이 채울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만적 요소가 있습니다. 교회가 예배당을 짓고,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돌아가고, 많은 사람이 붐비고 성장하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 없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허락하신 벧샬롬교회를 섬기며 늘 이것을 조심합시다. 그것은 거짓 가르침을 경계하여 물리치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참된 복음의 가르침에 천착하는 것입니다.

D. 복음에 합당한 방식으로 살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께서 교회에게 명하시는 세번째이자 마지막 명령은 복음에 합당한 방식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삶과 가정의 삶이 분리된 것이 아닌, 교회의 삶과 직장의 삶이 분리되지 않은, 일관성있는 신자의 삶, 복음의 원리와 은혜가 지배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단지 하나의 가르침이나 지적 체계가 아닙니다.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복음은 믿는 자를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은혜가 흘러나오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이 하나의 이념이거나 지적 체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며 살아 가셔야 합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항구적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목사가 한 번 지나가면서 하는 잔소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요한이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던 영광의 하나님,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시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의 소유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은 교회를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꾸짖으실 절대적 권리를 가지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주께서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대로, 저도 주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